읽고, 발견하고, 구조를 만드는 일
요즘 서로 다른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고, 누군가의 작업과 기록을 읽고,
도서관의 공간과 경험을 기획하고,
이미 만들어진 전시를 들여다보며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이 일들을 개별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일과 공간을 기획하는 일,
누군가의 작업을 읽는 일과 전시를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종류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나가면서
제가 반복해서 하고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읽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이 보일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일.
1. 읽는 일
작가를 만날 때 작품만 보지는 않습니다.
작품과 텍스트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질문합니다.
왜 이것을 시작했는지,
왜 계속하고 있는지,
왜 이것이어야 했는지.
때로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묻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을 듣다 보면
작품만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하나의 대답에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묻고 듣는 일을 반복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말과 이미지,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것들을 함께 읽습니다.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보이는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행동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경험이 반복되어 왔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디에서 머무는지를 살펴봅니다.
제게 읽는다는 것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질문하고, 기다리고, 대답을 듣고,
다시 들여다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무언가를 기획하기 전에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을 충분히 읽는 일이 먼저입니다.
2. 발견하는 일
처음부터 주제를 정해놓고
그 안에 재료를 끼워 맞추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읽고, 묻고, 듣다 보면
처음에는 따로 보이던 것들이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과 이미지가 있고,
계속 돌아가게 되는 작업이 있고,
작가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 대답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꺼내 보여야 할 것이 보이고,
중요하지만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있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을 찾아보는 것.
요즘 제가 기획의 시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3. 구조를 만드는 일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먼저 보여줄지,
어떤 순서로 경험하게 할지,
어떤 텍스트와 질문을 곁에 둘지 생각합니다.
작품의 순서, 텍스트와 질문,
책과 기록물, 테이블의 위치와 동선까지.
발견한 것을 제가 대신 설명하기보다
다른 사람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그래서 구조를 만드는 일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기획을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곳에 있던 것들을 다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아직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보일 수 있는 구조와 형태를 만드는 일.
전시에서도, 책에서도, 공간에서도
제가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안에서 반복하는 과정은 닮아 있습니다.
읽고, 발견하고, 구조를 만드는 것.
어쩌면 그동안 서로 다른 일을 해온 것이 아니라,
같은 방법을 여러 대상에 적용해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