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이페메라
한 사람의 삶은 수많은 종이 조각으로 이루어진다
2026.04.30. - 05.10.
이 전시는 한 사람이 남긴 종이 기록이,
다른 사람에게 보관된 이후
어떤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지를 다룬다.
봉투, 우표, 손글씨 메모, 정리되지 않은 인쇄물들은
애초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때 전달되기 위해 존재했지만,
지금은 전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것들을 보관하는 사람은
그 의미를 해석하거나 확장하지 않는다.
다만 버리지 않고, 겹쳐 두고, 묶어 둔다.
이 전시는 의도적으로 구축된 아카이브가 아니라,
남겨진 것을 보관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축적은 설명이나 분류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상태이다.
전시 공간에 놓인 수집물과 이미지들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완결된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로 존재한다.
관람객은 Archive Slip을 통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일부를 가져가며,
개인의 기록이 전시의 아카이브에
다시 축적되는 흐름에 참여하게 된다.
이 전시는 남겨진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시간이 더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전시에서 파생된 몇 가지 형태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기록의 상태를 이어간다.
수집품 세트는
종이와 봉투, 묶인 상태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장면처럼 보관된 형태에 가깝다.
아카이브 프린팅 시트는
겹쳐진 종이와 흔적을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하여
기록의 밀도를 다른 방식으로 전달한다.
아카이빙 파일은 보다 가벼운 구조로,
수집된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정리하거나
이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처럼 각각의 형태는 동일한 기록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머무르게 하며,
전시는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여러 층위로 이어지는 상태로 존재한다.
이 전시는 남겨진 타인의 종이들을 통해,
결국 자신의 삶에 남아 있는 기록을 다시 보게 한다.
Archive Slip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자신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Archive Slip'이 놓였다.
관람객은 전시를 보며 떠오른 문장과 오늘의 분위기,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직접 기록했고,
작성된 슬립의 윗부분은 벽면에 붙여 전시의 일부로 남기고,
절취선 아래의 'Visitor's Piece'는 관람객이 가져가
각자의 일상 속 아카이브로 이어갈 수 있었다.
전시를 지나간 사람들의 짧은 문장들이
또 하나의 이페메라처럼 차곡히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