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북 03 : 열림


2026.03. 17. - 03.29.



드로잉북이 좋았다. 

종이 위에 가장 솔직한 마음이 남는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드로잉북은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어떤 이의 기록에 가깝다.

생각이 머뭇거린 자리,

손이 먼저 움직인 순간,

말로 옮기기 전의 감정들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기 때문이다.


《드로잉-북 03 :열림》은

이처럼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의 드로잉을

책이라는 형식 안에서 천천히 들여다보는 전시이다.

여기서 '열림'은

무언가를 크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생각이 머무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열어두는 태도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로잉을 이어온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김가슬은

드로잉을 조형과 구조의 언어로 다룬다.

선과 면, 반복과 리듬을 통해

드로잉북은 사적인 노트를 넘어

형식 실험의 장이 된다.


김져니의 드로잉에는

일상의 감정과 작은 이야기들이

오롯이 스며 있다.

크지 않은 장면들이 쌓이며

하나의 서정적인 기록이 되고,

드로잉북은 그 흐름을 가장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최진영의 드로잉은

관찰과 놀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유며와 상상력이 가볍게 스며든 선들 속에는

날카로운 시선이 함께 자리하며,

드로잉북은 일상의 언어로 열려

관객의 미소와 공감을 이끈다.


홍시야의 드로잉에는

몸과 마음의 감각이 동시에 담겨 있다.

호흡처럼 이어지는 선과 리듬은

드로잉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하나의 감각적 기록으로 확장시킨다.


서로 다른 결의 드로잉북들은

한 공간 안에 나란히 놓여

각자의 속도로 읽히기를 기다린다.


꼬메아미꼬 갤러리는 드로잉북 전시마다

'읽는 자리'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해왔다.

관객이 책 앞에 머무르며

직접 넘기고 멈추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리듬으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왔다.

어떤 페이지는 오래 간직해도 좋고,

어떤 장면은 스쳐 보내도 괜찮다.


《드로잉-북 03 :열림》은

드로잉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아직 닫히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열린 상태 자체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DRAWING BOOK QUESTION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잠시 멈춰 자신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도록

두 개의 질문이 놓였다.


드로잉북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에게 드로잉북은 어떤 기록인가요?''를,

드로잉북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 남기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요?''를 물었다.


관람객은 한 줄의 글이나 짧은 드로잉으로

각자의 감각과 시간을 남길 수 있었고,

그 기록들은 갤러리 기획 노트 위에 차곡히 쌓이며

전시를 지나간 또 다른 드로잉이 되었다.